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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전기를 '사고판다'는 개념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전기는 그냥 콘센트에서 나오는 것, 요금은 전기회사에 내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호에서 살면서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들 때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쌓였습니다. 집 지붕에 솔라 패널을 달아 전기를 만들어도, 남는 전기를 파는 단가보다 사올 때 단가가 5~10배나 비싸다는 걸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전력시장 구조가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실감했습니다.

전기를 주식처럼 사고파는 게 가능한가 — 어그리게이터와 축전소
도쿄 빅사이트에서 열린 스마트 에너지 위크 2026 현장 보도를 접했을 때, 제가 처음 든 생각은 "이게 정말 개인도 할 수 있는 얘기인가?"였습니다. 전력 가격이 시간대별로 다르고, 그 차익으로 수익을 낸다는 구조는 주식 단타처럼 들렸거든요.
일본에서는 이 모델이 이미 현실입니다. 핵심은 에너지저장장치(ESS, Energy Storage System)와 어그리게이터(Aggregator)의 결합입니다. 여기서 ESS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을 대형 배터리에 저장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 쓰거나 파는 설비를 말합니다. 그리고 어그리게이터란 여러 개의 분산된 ESS와 소규모 전원을 하나로 묶어 실시간 전력 도매시장에서 대신 거래해주는 중개 사업자를 뜻합니다. 쉽게 말해 전력 버전의 증권사라고 보면 됩니다.
개인이나 사업자가 ESS를 설치하고 어그리게이터에 운용을 맡기면, 어그리게이터가 전력 도매가격이 낮을 때 충전하고 피크 시간에 방전해 수익을 내고 이를 나눠주는 구조입니다. 현지 보도에서는 수십억 원대 ESS 설비로 상당한 수익을 냈다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쯤 되면 ESS를 단순한 설비가 아니라 투자 자산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이해가 됩니다.
일본 도매 전력시장에서 도쿄 권역의 1kWh 가격은 하루에도 10엔 넘게 오르내리는데, 이 변동성이 바로 차익 거래의 기반이 됩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수록 낮 시간대 공급 과잉과 저녁 피크 수요 급증이 반복되면서 이 격차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본 정부가 204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현재 약 20%대에서 40~5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세운 만큼(출처: 일본 경제산업성 자원에너지청), ESS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축전소 사업', 즉 태양광과 ESS를 결합해 전력을 저장했다가 되파는 사업 모델이 일본에서 급격히 확산되고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신규 설치 신청이 기존 설치 용량을 크게 웃돌 만큼 몰리고 있다는 보도가 이를 보여줍니다.
지붕 위 솔라, 그런데 왜 손해 보는 느낌일까
저는 호주에서 6평짜리 작은 샵을 운영하고 있는데, 3개월 전기요금이 약 3,000호주달러입니다. 10년 전에 비하면 100% 이상 오른 수준입니다. 제 체감으로는 상업용 전기요금이 가정용보다 훨씬 비싼데, 이것 자체가 시장 설계의 문제라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호주 가정의 솔라 패널 얘기를 하면 더 아이러니합니다. 지붕에서 직접 전기를 만들어도, 남는 전기를 전기회사에 팔 때는 kWh당 몇 센트를 받고 다시 사올 때는 그 5~10배를 지불해야 합니다. 가정용 배터리가 없으면 이 구조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습니다. 다행히 2026년 7월 1일부터는 호주 에너지규제청(AER)이 정한 'Solar Sharer Offer' 제도가 시행돼 신청한 가정에 한하여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사이 3시간은 가정용 전기요금이 무료로 공급되고 있습니다(출처: 호주 에너지규제청(AER)). 제 샵은 상업용이라 이 혜택을 받을 수 없었지만 그나마 가정에는 조금 숨통이 트이는 정책이라고 느꼈습니다.
같은 ESS인데, 한국은 왜 창고로만 쓸까
일본과 비교하면 구조적 차이가 뚜렷합니다. 한 시장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2025년 ESS 시장 규모는 약 93억 달러(약 12조 원)로 추산되는 반면, 한국은 약 30억 달러 수준입니다. 한국이 ESS 누적 설치 용량에서는 약 6~7GW로 일본의 1~2GW를 크게 앞서지만, 시장 규모는 3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이 역설적인 수치가 저는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설치 용량이 많다는 건 '배터리를 얼마나 지었는가'를 보여줄 뿐, '그 배터리로 얼마나 활발히 거래하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한국은 창고는 크게 지어놓고 자물쇠로 잠가둔 셈이고, 일본은 작은 창고를 쉼 없이 열고 닫으며 장사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2023년 전기사업법 개정 이후 대규모 ESS 사업자가 재생에너지를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됐고, 규제자유특구나 분산특구 같은 특정 지역에서 ESS 전력 중개·판매 실증이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변화의 조짐은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이나 소규모 사업자가 전국 단위로 자유롭게 전력을 사고팔 수 있는 단계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습니다. 일본과의 격차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 설계와 제도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이 구조를 보면서 일본 모델이 전기회사와 개인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전력회사 입장에서는 민간 ESS가 늘어날수록 피크 시간 대응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줄일 수 있고, 개인은 소규모 투자로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으니까요. 물론 어그리게이터 시장이 잘 설계돼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방향성 자체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도쿄 현장에서 확인된 일본의 ESS 전력거래 모델을 들여다보면서, 제가 느낀 건 기술 격차가 아니라 제도 설계의 격차였습니다. 어그리게이터 중심의 전력 도매시장,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구조, 그리고 ESS를 투자 자산으로 인식하는 시장 생태계가 맞물려야 산업이 커질 수 있습니다.
호에서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그리고 솔라 패널로 만든 전기를 터무니없이 낮은 단가에 팔면서 제가 매번 느꼈던 불합리함이 사실 시장 설계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는 더 확실해졌습니다. 한국도 제주도 중앙계약시장 실증과 분산에너지, ESS 중계시장을 위한 2026년 분산특구 추진단 가동으로 걸음마를 떼고 있으니, 전력시장 개방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되느냐가 앞으로 ESS 산업 성장의 가장 큰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 에너지경제신문 — 스마트 에너지 위크 2026 현장 보도 / KBS 유튜브 — 일본 ESS 전력거래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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