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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산업

카타르가 5년 만에 다시 거제도에 줄 선 이유 (LNG선 발주, 금속막)

Extra Wage 2026. 9. 24.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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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에서 1인당 소득이 7만 달러에 달하는 최고 부자 나라가, 한번 걷어찼던 조선소 앞에 다시 줄을 서야 했습니다. 그것도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제가 거제도를 방문했을 때 거리마다 넘치던 조선소 직원들의 활기찬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풍경이 단순한 호황이 아니라 30년 세월이 쌓아올린 필연적 결과라는 걸, 카타르의 5년짜리 실책이 정확히 증명해 주었습니다.

    LNG선 발주: 카타르가 싼 걸 골랐다가 더 비싸게 산 이야기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게 있다는 말, 사실 처음엔 그냥 격언처럼 들렸습니다. 그런데 카타르와 거제도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카타르는 페르시아만 아래 묻혀 있는 노스필드 가스전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 LNG(액화천연가스) 수출국 자리를 지켜온 나라입니다. LNG란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냉각해 액체 상태로 만든 것으로, 부피를 600분의 1로 줄여 선박으로 운반하기 위해 만든 연료입니다. 카타르는 2030년까지 연간 LNG 생산량을 현재의 7,700만 톤에서 1억 4,200만 톤으로, 무려 85% 늘리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그 엄청난 물량을 실어 나를 배가 128척이나 필요했다는 점이었습니다.

    2019~2020년 무렵, 카타르는 갈림길에 섰습니다. 한국 조선사의 1척당 단가는 약 2억 달러. 중국 후동중화조선은 그보다 눈에 띄게 저렴했습니다. 척당 수천만 달러, 128척 기준으로 따지면 조 단위 절감이 가능한 계산이었습니다. 카타르가 중국을 선택한 건 그래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후동중화가 지은 LNG선들은 호주 항로에서 잇따라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2023년 11월에는 CESI 칭다오호가 호주 퀸즐랜드 커티스 아일랜드의 LNG 수출 터미널에 접안한 채 발전기 고장으로 멈춰 서, 약 일주일 동안 부두를 막고 세 차례 선적을 지연시켰습니다. 결국 배는 중국으로 견인됐고, 호주 해사안전청(AMSA)은 이 배의 호주 입항을 180일간 금지했습니다(출처: The Maritime Executive).

    그 사이 한국 조선소에는 미국 셰일가스 혁명 수혜 물량, 러시아 의존도를 줄이려는 유럽의 긴급 발주, 노르웨이·그리스·일본 선사들의 주문이 층층이 쌓였습니다. 카타르가 다시 거제도 문을 두드렸을 때 돌아온 답은 인도 시점이 몇 년 뒤로 밀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부자 나라가 배 한 척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몇 년을 기다리라는 답을 받은 겁니다.

    결과는 숫자가 말해줍니다. 카타르가 여러 차례에 걸쳐 발주한 LNG선 가운데 대부분을 HD현대,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한국 조선 3사가 가져갔고, 후동중화의 몫은 일부에 그쳤습니다. 5년 전 척당 1억 9,000만 달러가 아깝다며 중국으로 갔던 카타르가, 이번엔 척당 2억 3,000만 달러에 프리미엄까지 얹어서 한국 배를 사고 있습니다. 대형 Q-Flex·Q-Max급은 척당 3억 달러를 훌쩍 넘겼습니다.

     

    요약: 카타르가 단가 절감을 위해 중국 발주를 선택했지만, 잇따른 품질 결함과 글로벌 발주 쏠림으로 결국 더 비싼 가격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용카드 두께의 금속막, 30년간 7조 4천억을 프랑스에 낸 이유

    거제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조선소 자체가 아니라 도시의 질감이었습니다. 인구의 25%가 조선업에 종사하며 도시 전체 소비를 떠받치고 있었고, 삼성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나란히 자리한 거제는 조선업이라는 생태계가 도시를 통째로 구성하는 곳이었습니다.

     

    LNG선의 핵심은 멤브레인 화물창입니다. 영하 162도의 LNG를 담기 위해 신용카드 한 장 두께(약 1.2mm)의 스테인리스 박막을 정밀 시공한 초저온 단열 구조물로, 원천 특허는 프랑스 GTT가 독점하고 있습니다(출처: GTT). 문제는 특허를 사는 것과 실제로 만드는 것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한국 조선 3사가 30년간 GTT에 지급한 로열티는 7조 4,000억 원, 척당 150억 원이 넘습니다. 이 비용을 치르며 LNG선 580척을 건조한 결과, 10년 이상 걸리는 극저온 용접 숙련공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중국이 도면은 가졌어도 그 도면을 배 위에 옮길 손이 부족했던 이유입니다.

     

    한국도 순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2004년 시작된 국책 과제 KC-1은 2018년 적용 직후 콜드 스팟 결함이 발견돼 수천억 원대 배상 판결로 이어진 뼈아픈 실패였습니다. 하지만 그 경험이 더 정교해진 KC-2 개발로 이어지고 있고, 정부는 2030년부터 국산 화물창 실선 적용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성공하면 매년 프랑스로 빠져나가던 로열티가 국내로 돌아옵니다.

     

    다만 낙관하기엔 이릅니다. 8대 2였던 한중 LNG선 점유율은 2026년 7월 기준 6대 4까지 좁혀졌고, 후둥중화의 건조 기간도 한국 수준까지 단축됐습니다. 맥킨지는 "한중 기술 격차가 미미한 수준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반도체에서 반복된 기술 우위→가격 공세→격차 축소 패턴이 조선업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셈입니다. 지금의 호황은 실적이지만, 다음 10년을 위한 투자는 지금 시작돼야 합니다. 자율운항, SMR 추진선, 전기추진 같은 차세대 기술이 그 답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요약: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은 30년간 580척을 만들며 쌓은 멤브레인 시공 숙련도와 실전 인도 실적에 있지만, 중국의 가격·속도 추격이 빠른 만큼 차세대 기술 선점이 지금의 핵심 과제입니다.

     

    결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71년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에서 500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차관을 얻어냈다는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그 한 장의 지폐에서 시작한 조선업이 50년 만에 세계 최고 부자 나라를 거제도 앞에 줄 세우는 데까지 왔습니다. 제가 직접 거제도 골목을 걸었을 때 느꼈던 그 활기가, 사실은 수십 년치 선택들이 쌓인 결과였다는 걸 이제는 확실히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 자리가 영원히 보장된 건 아닙니다. 한중 LNG선 점유율이 6대 4로 좁혀진 속도를 보면, 지금의 호황이 방심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KC-2 국산 화물창 개발 성공, 자율운항과 SMR 추진 같은 차세대 기술 선점, 그리고 숙련공 생태계를 다음 세대로 잇는 일. 이 세 가지가 함께 돼야 거제도의 풍경이 10년 뒤에도 같은 온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참고: Australia bans Chinese LNG carrier after breakdown (The Maritime Executive)

    글쓴이 | Extra Wage
    한국 대기업에서 22년 동안 회계·세무·자금 업무를 맡아 CFO로 퇴직했고, 지금은 호주에서 10년 넘게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겪은 경험으로 경제 이야기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