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집값을 잡으면 세입자도 숨통이 트일 거라고 생각하셨습니까? 호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주택자에게 세금 폭탄을 안기고 실제로 집값 하락에 성공했는데, 임대료는 오히려 불이 붙었습니다. 저는 10년째 호주에 거주하면서 이 시장의 냉혹한 민낯을 직접 겪어왔고, 그렇기에 이 역설이 남 얘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집값과 임대료, 따로 노는 두 시장
호주 주택 가격은 올해 3월 정점을 찍은 뒤 넉 달 만에 전국 평균 2% 하락했습니다. 시드니와 멜버른은 최고점 대비 5% 넘게 빠졌고, 호주 국내 은행 이코노미스트들은 최종적으로 주요 도시 평균 7% 이상 하락할 거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수치만 보면 '드디어 집값이 잡혔다'는 뉴스처럼 읽힙니다.
그런데 저는 이 소식을 보면서 선뜻 기뻐할 수가 없었습니다. 집값 하락과 임대료 상승이 동시에 일어나는 구조를 이미 피부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동산 정보 업체 Domain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시드니 주택 평균 임대료는 전 분기 대비 50달러나 올라 석 달 만에 6.3% 급등했습니다(출처: Domain Research). 집값이 내리는 속도보다 임대료가 오르는 속도가 훨씬 빨랐던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집값이 떨어지면 임대 시장도 안정될 거라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이건 분명히 다릅니다. 매매 시장과 임대 시장은 별개의 논리로 움직이고, 공급이라는 변수가 빠지면 집값 하락이 세입자에게 아무런 혜택을 주지 못합니다.
네거티브 기어링 폐지가 불러온 나비효과
이번 집값 하락을 이끈 핵심은 호주 정부의 세제 개편입니다. 두 가지 제도가 동시에 손질됐는데, 그 중 하나가 네거티브 기어링(Negative Gearing)입니다. 여기서 네거티브 기어링이란, 집주인이 지출한 대출이자나 수리비가 받은 임대료보다 많을 경우 그 적자분을 집주인의 근로소득에서 공제해주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해 집을 빌려주고 손해를 봐도 나라가 세금으로 일부를 벌충해주는 구조였습니다.
또 하나는 양도소득세(Capital Gains Tax, CGT) 감면입니다. 1999년부터 호주는 부동산을 12개월 이상 보유하면 매매 차익의 절반에만 세금을 물렸습니다. 이 두 제도가 맞물리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빚을 내서 집을 사는 다주택 투자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호주 집값을 끌어올린 주요 동력이 됐습니다.
지난 5월 호주 정부는 내년 7월부터 기존 주택 구입자에 대한 네거티브 기어링을 폐지하고, CGT 할인도 50%가 아닌 물가 상승률 수준으로 대폭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여기에 호주 중앙은행(RBA)이 올해 2월, 3월, 5월, 9월 네 차례 기준 금리를 인상하면서 금리가 3.6%에서 4.60%로 올라갔습니다.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덩달아 치솟자 이자 부담을 견디기 어려워진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쏟아냈고, 세금 인상이 두려운 예비 매수자들은 발을 뺐습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집값 하락입니다.
저도 호주 정착 초창기부터 이 외국인 stamp duty 문제를 체감했습니다. Stamp duty란 부동산 취득 시 주(State) 정부에 납부하는 취득세로, 외국인은 호주 시민권자보다 약 3배를 더 내야 했습니다. 집값이 끊임없이 오르는 걸 보면서도 외국인 신분으로 집을 사겠다는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For Sale 푯말이 몇 집 건너 하나씩 보일 정도로 매매가 활발하던 때조차도 그 장벽은 여전했습니다.
임대료 폭등의 진짜 이유 — 주택 공급 부족
집값이 내려가는데 임대료가 오르는 현상의 근본 원인은 공실률(vacancy rate)에 있습니다.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는 적정 공실률은 약 3%로 봅니다. 그런데 호주 전국 평균 공실률은 고작 1.6%에 불과합니다. 사실상 빈집이 없다는 뜻이고, 세입자들은 줄을 서서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저도 정착 초창기에 이 현실을 온몸으로 겪었습니다. 렌트(Rent)를 구하기 위해 수십 곳의 집을 inspection(현장 방문)하고 application(입주 신청서)을 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호주의 임대 구조는 한국과 완전히 다릅니다. 전세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임대료는 월 단위가 아닌 주(週) 단위로 냅니다. 그리고 부동산이 접수된 application을 먼저 심사한 뒤, 과거 임대 이력이 양호한 지원자를 추려서 집주인에게 올리면 집주인이 최종 선택을 합니다. 외국인이라 임대 이력이 없으면 경쟁에서 밀리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공급 부족이 이렇게 심각해진 데는 이민자 폭증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고 2022년 국경이 다시 열리면서 유학생을 포함해 불과 2년 반 만에 100만 명이 순유입됐습니다. 호주 정부는 2024년에 5년간 120만 호 공급 계획을 발표했지만, 실제로 지난 21개월간 완공된 주택은 31만 채에 그쳤습니다(출처: 호주통계청(ABS)). 건설 인력 부족, 자재 가격 급등, 고금리가 한꺼번에 발목을 잡은 결과입니다.
Corelogic 통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호주 전국 평균 임대료는 40.6% 올랐는데, 같은 기간 임금 상승률은 18%에 머물렀습니다. 이제 호주 세입자들은 가구 총소득의 4분의 1을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습니다. 임대료 상승분이 임금 인상을 두 배 이상 앞질렀으니, 세입자의 실질 생활 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한 셈입니다.
다주택자 세금 올리면 임대료도 오른다 — 이 등식이 맞는가
세제 개편 발표 이후 부동산 업계에서는 임대료가 25~30% 인상될 거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국립 호주 은행(NAB)의 이코노미스트 가레스 펜스는 시드니와 멜버른의 투자용 부동산 임대 수익률(rental yield)이 현재 3.5%에서 4.5%로 1%포인트 상승해야 투자자들이 세제 손실을 만회할 수 있으며, 이는 주택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임대료 25~30% 인상을 의미한다고 분석했지만, 호주 재무부는 주당 2달러, 전국 평균 기준으로 0.3%에 불과할 거라고 반박했습니다. 30%와 0.3%, 이 엄청난 격차 앞에서 어느 쪽을 믿어야 할지 솔직히 저도 판단이 서지 않았습니다.
다만 확실한 건, 세제 개편안이 처음 발표된 5월 이후 임대 시장이 실제로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집주인들이 내년 7월 시행 전부터 사라질 세제 혜택을 임대료에 미리 반영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흐름은 이론이 아닌 시장 데이터로 이미 확인되고 있습니다.
결론
10년 동안 호주에서 살면서 렌트를 구하러 다니던 시절부터, For Sale 푯말이 줄지어 서던 시기, 그리고 RBA가 금리를 급속히 올리면서 드디어 집값이 내리는 걸 보던 순간까지 지켜봤습니다. 솔직히 집값 하락 소식에 처음엔 안도했지만, 임대료가 동시에 치솟는 걸 보면서 이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결국 공급이 받쳐주지 않는 한, 다주택자 세금을 아무리 올려도 세입자의 삶은 나아지지 않습니다. 매매 시장의 투기 열풍을 잡는 것과 임대 시장의 세입자를 보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앨런 콜러의 말처럼, 인기가 없더라도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정치적 결단이 없다면 이 악순환은 반복될 것입니다. 한국의 부동산 정책을 논의하는 분들도 호주의 이 사례를 한번쯤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부동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호주 집 사는 데 한 달, 한국은 하루 (쿨링오프, 컨베이언서, 하자) (0) | 2026.10.12 |
|---|---|
| 호주 렌트와 한국 전월세, 세입자로 살아보니 (컨디션 리포트, 인스펙션, 이사) (0) | 2026.10.11 |
| 실버타운 보증금 왜 위험한가? (PF 대출, 선순위 채권, 계약서 확인) (0) | 2026.09.26 |
| 호주 부동산 급락과 한국의 교훈(금리 다시 오름, 연속 하락, 시사점) (0) | 2026.09.25 |
| 효도로 시작했는데 죄가 된 농지법(농지법개정, 농지 전수 조사, 이행강제금, 황당한 현실) (0) | 2026.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