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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가게에서 일했던 몽골 출신 직원 이야기를 꺼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분은 휴가 때마다 몽골이 아닌 한국으로 갔습니다. 가족이 거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이 머릿속에 계속 남았습니다. 수출의 91%를 중국에 의존하면서도 국민 대다수가 중국 대신 한국을 택한 나라, 몽골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정리해 봤습니다.

반중정서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몽골의 상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동쪽도 중국, 남쪽도 중국, 북쪽은 러시아. 면적은 156만 제곱킬로미터로 한반도의 7배에 달하는데, 바다와 항구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지형적 조건을 내륙국 의존성(landlocked dependency)이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내륙국 의존성이란, 항구 없이 주변국 육상 통로에 전적으로 의존해 무역을 해야 하는 구조적 취약성을 말합니다. 몽골은 무언가를 수출하든 수입하든 반드시 중국 땅을 거쳐야 합니다.
2024년 기준 몽골 수출의 91.4%가 중국으로 향합니다(출처: World Bank Mongolia). 숫자만 보면 완전한 경제적 종속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중국은 이 약점을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해 왔습니다. 2016년 몽골이 달라이 라마를 초청하자 중국은 국경 통과 수수료를 신설하고 양국 회담을 무기한 중단했습니다. 2006년에는 철도 운행과 항공 노선을 동시에 끊어버렸습니다. 물류가 막히면 석유도, 식량도, 생필품도 들어오지 않습니다. 결국 몽골 외무장관이 직접 나서 달라이 라마의 방문을 더 이상 허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감정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 내몽골 자치구에서는 공식 기록만으로도 사망자 22,900명, 박해자 79만 명이 나왔습니다. 당시 내몽골 몽골인 인구가 약 150만 명이었으니 세 명 중 한 명꼴로 피해를 본 셈입니다. 그리고 이게 60년 전 이야기로 끝나지 않습니다. 2020년에는 내몽골 학교에서 몽골어 수업을 중국어로 전면 교체하겠다는 발표에 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언어와 역사, 영웅까지 빼앗기는 경험이 몽골의 반중정서를 세대를 넘는 집단 트라우마로 만들었습니다.
한국이 몽골에 작동시킨 소프트파워
소프트파워(Soft Power)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하버드대 조지프 나이 교수가 정립한 이 개념은, 군사력이나 경제적 압박 없이 문화·가치관·매력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강요하지 않고도 스스로 따라오게 만드는 힘입니다. 몽골에서 한국이 한 것이 정확히 이겁니다.
1990년대 초반 몽골 지역 방송에서 한국 드라마가 처음 흘러나왔을 때, 아무도 이게 외교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대장금'이 안방을 점령하고, '겨울연가'가 눈물을 쏟게 했습니다. '야인시대'의 김두한 역을 맡은 배우 안재모는 몽골 대통령에게 국빈 초청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드라마 하나가 외교를 움직인 겁니다. 이후 BTS와 블랙핑크가 왔고, 몽골 젊은 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몽골에서 열리는 한국문화 축제는 몽골 3대 축제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중국 콘텐츠와의 결정적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중국 콘텐츠는 몽골인들에게 동화(同化)의 도구로 인식됩니다. 자신들의 언어를 빼앗으려 했던 나라의 문화를 편하게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한국 콘텐츠는 누가 시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찾아봤고, 스스로 좋아하게 됐습니다. 그 차이가 전부입니다. 강압은 복종을 만들지만, 매력은 충성을 만든다는 말이 이 상황에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한류는 어떻게 한국어 열풍과 소비 문화로 이어졌나
드라마가 마음을 열면 언어가 파고듭니다. 현재 몽골 초중고에서는 한국어가 제2 외국어로 채택되어 있습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유치원까지 생겼는데, 한 달 학비가 15만 원 수준으로 몽골 물가 기준으로는 비싼 편임에도 대기자가 넘칩니다. 대학교 한국어 학과는 최고 인기 학과입니다. 같은 외국어인 중국어 학과의 인기는 바닥을 치고 있습니다.
언어를 넘어 소비 문화의 지형도 바뀌었습니다. 울란바토르에는 이마트가 6호점까지 문을 열었고, 맘스터치가 20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CU 편의점은 600개가 넘고, 메가커피와 탑텐도 들어서 있습니다. 이마트 안에서는 김밥과 떡볶이를 파는 델리 코너를 만날 수 있고, 한국 대형마트의 몽골 점포 매출은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습니다. 울란바토르 외곽에는 한국식 아파트 단지로 설계된 신도시까지 올라가고 있는데, 이름이 '몽탄'입니다. 동탄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숫자도 이 흐름을 뒷받침합니다. 2022년 10월 기준 한국에 체류 중인 몽골인은 58,686명으로(출처: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이는 몽골 전체 인구의 약 1.7%에 해당합니다. 몽골인 10명 중 한 명은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이들이 한국에서 벌어 본국으로 송금하는 금액은 연간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몽골 GDP 대비 약 5%에 달하는 규모입니다. 저희 샵에서 일했던 그 직원도 이 흐름 안에 있었던 겁니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걸 보지만 한 가지 경계할 것
몽골 이야기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호주에서도 똑같은 흐름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울워스(Woolworths) 같은 대형 마트에서 한국 식품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지금은 라면, 빼빼로, 양파링, 김, 만두가 진열되어 있고, 매장에서 BTS 노래가 흘러나올 때도 있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제 샵을 오는 손님들 중에도 간단한 한국말을 쓰는 호주인들이 꽤 늘었고, 한국 여행 추억을 꺼내거나 요즘 보는 한국 드라마 이야기를 건네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류는 몽골만의 현상이 아닌 겁니다.
다만 한 가지는 짚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몽골에서 한류를 다루는 콘텐츠들을 보면, 친한 감정을 보여주는 여론조사 수치가 자주 인용되지만 정작 그 출처가 명확한 경우는 드뭅니다. 몽골 내 친한 감정이 강하다는 방향성 자체는 여러 가지 자료가 공통으로 뒷받침하지만, 출처가 불분명한 숫자로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식은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반중정서를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몽골이 한국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중국이 싫어서가 아닙니다. 한국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매력을 유지하는 것이 숫자를 부풀리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적 매력도 이기주의적으로 활용되는 순간 그 신뢰는 금이 갑니다. 몽골이 한국을 솔롱고스, 즉 '무지개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유를 계속 지켜낼 수 있는지가 진짜 관건입니다.
결론
저희 샵 직원이 휴가마다 한국으로 갔던 이유를 이제는 좀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건 단순히 가족이 거기 있어서만이 아니라, 몽골과 한국 사이에 수십 년에 걸쳐 쌓인 문화적·경제적 연결의 결과였습니다. 드라마 한 편이 마음을 열고, 언어가 파고들고, 이마트와 맘스터치가 일상이 됐습니다. 한국은 군사력도, 경제적 압박도 쓰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이 이야기의 핵심은 반중정서가 아닙니다. 강요하지 않는 문화가 왜 강한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매력을 계속 유지하는 것, 검증되지 않은 수치나 자극적인 서사에 기대지 않고 실제 콘텐츠와 신뢰로 관계를 쌓아가는 것이 소프트파워의 진짜 지속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몽골이 한국을 솔롱고스, 무지개의 나라로 부르는 이유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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