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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다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육성회비를 내지 못한 아이들을 앞으로 불러내 빨리 내라고 재촉하곤 했고, 그 자리에서 창피를 당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친구들의 어머님이 가끔 가발용으로 머리카락을 잘라 파시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어머님들은 한동안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다니셨습니다. 마을에 머리카락을 사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머리카락은 아마 가발이 되어 바다를 건넜을 겁니다. 그 기억이 떠오른 건, 한국의 연간 수출이 사상 처음 1조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였습니다.

11달이 36분이 되기까지
1964년 한국은 수출 1억 달러를 넘긴 날을 기념일로 만들었습니다. 1월 1일부터 꼬박 11달이 걸린 숫자였습니다. 1970년에는 가발 하나가 나라 전체 수출의 10%쯤을 채울 만큼 큰 수출품이었습니다. 1977년에는 연간 수출이 100억 달러를 넘었고, 1억 달러를 파는 데 걸리는 시간은 나흘 반으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2026년, 한국은 9월 5일에 이미 작년 한 해 수출 실적인 7,093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작년보다 117일 빠른 248일 만이었습니다(출처: 산업통상부). 9월 한 달 수출은 1,20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83.5% 늘며 사상 처음 1,200억 달러를 넘었고, 평균 36분마다 1억 달러어치가 부두를 떠난 셈입니다(출처: 산업통상부). 지금까지 연간 수출 1조 달러를 넘긴 나라는 미국, 중국, 독일 셋뿐인데, 관세청은 지금 흐름이면 12월 초쯤 한국이 네 번째가 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출처: 관세청).
반도체가 끌고, 다른 수출품이 받친다
가장 큰 수출품은 반도체입니다. 올해 1~8월 반도체 수출은 작년보다 169.6% 늘어 전체 수출의 40.6%를 차지했고, 9월에는 603억 달러로 한 달 수출의 절반 가까이까지 올라섰습니다(출처: 산업통상부). 인공지능 데이터센터가 한국 메모리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반도체만 있는 건 아닙니다. 1~8월 반도체를 뺀 수출도 18% 늘었습니다(출처: 관세청). 값비싼 LNG 운반선과 방산 수출도 함께 커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매일 보는 수출품들이 있습니다. 시드니의 스트라스필드나 리드컴에 가면 한국 슈퍼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가게들이 많이 있어, 한국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합니다. 아시안 슈퍼에는 한국 상품이 산처럼 쌓여 있고, 호주에 사는 다른 아시아인들도 한국 상품을 유독 좋아합니다.
제 가에서도 지난 10년 동안 품질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하는 한국 김만 써 왔고, 마요네즈도 한결같이 오뚜기를 씁니다. 작년 한국 김 수출은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 11억 달러를 기록했고(출처: 해양수산부), 라면은 처음으로 수출 2조 원을 넘겼으며(출처: 관세청), 화장품은 114억 달러로 프랑스 다음 세계 2위에 올랐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제 가게의 김 한 장도 그 숫자 안에 들어 있는 셈입니다.
1조 달러의 그림자
다만 한 가지는 짚고 싶습니다. 1970년 한국 수출의 40%는 옷과 옷감이었고, 지금 그 비중은 1% 남짓입니다. 그런데 지금 반도체 비중이 바로 그때의 옷 비중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넘어섰습니다. 메모리 반도체는 가격이 크게 오르내리는 품목입니다. 지난 6월 한국은 한 달 수출이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넘으며 독일·중국·미국에 이어 세계 네 번째로 '월 수출 1,000억 달러 국가'가 됐습니다(출처: 산업통상부).
그런데 같은 달 실제로 실어 보낸 물건의 양은 무게로 따져 1년 전보다 오히려 3.3% 줄었습니다(출처: 관세청). 금액이 늘어난 건 물건을 더 많이 팔아서가 아니라 값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뜻입니다. 가격이 꺾이면 1조 달러라는 숫자도 함께 흔들릴 수 있습니다. 또 수출 금액이 그대로 내 월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한국이 여기까지 온 힘은 한 가지 물건이 아니라, 가발에서 철강과 배로, 다시 자동차와 반도체로 파는 물건을 계속 바꿔 온 데 있었습니다. 1조 달러라는 숫자보다 그다음 수출품이 무엇인지가 더 중요해 보입니다.
결론
어머님들이 머리카락을 잘라 팔던 시절, 그 머리카락이 이 나라의 수출품이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저는 호주에서 한국 김으로 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국은 이제 반도체와 배, 그리고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일부러 찾아와 사 가는 김과 라면과 화장품을 팝니다. 연말에 1조 달러 소식이 들려오면 반가울 겁니다. 다만 그 숫자를 만든 진짜 힘은 팔던 물건을 계속 바꿔 온 실력, 그리고 그 시절 수건을 두르고 다니셨던 어머님들 같은 분들의 희생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싶습니다.
참고: 9월 수출 1200억 달러 돌파 '사상 최대'…반도체, 단일 품목 첫 600억 달러 경신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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