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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효도로 시작했는데 죄가 된 농지법(농지법개정, 농지 전수 조사, 이행강제금, 황당한 현실)

Extra Wage 2026. 9. 19. 20:30

목차


    2026년 5월, 헌정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농지 전수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1차 조사를 마친 132만 헥타르, 1,013만 필지 가운데 무려 27%가 법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습니다. 저도 이 뉴스를 처음 접했을 때 남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효도하겠다고 어머님께 증여받은 제 땅이 바로 그 조사 대상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농지법 개정, 숫자로 보면 무게가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농지법 개정이라고 하면 '농사 안 짓는 외지인 투기꾼을 잡는 법'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실제로 피해를 호소하는 분들 대부분이 투기꾼이 아니라 부모님한테 땅을 물려받은 평범한 자녀들이거나, 몸이 아파 더 이상 밭에 나가지 못하는 어르신들입니다.

    2026년 5월 7일 개정 농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두 가지가 크게 바뀌었습니다. 첫째, 농지 처분 명령이 지자체 재량 규정에서 의무 규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시장, 군수, 구청장이 "명할 수 있다"였던 것이 이제는 "명하여야 한다"로 강화되었습니다.

    둘째, 처분 의무 통지 후 1년, 그 이후 6개월 이내에 매각을 이행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이 부과됩니다. 여기서 이행강제금이란 행정 명령을 따르지 않을 때 매년 반복해서 부과하는 금전 제재로, 감정평가액 또는 개별 공시지가 중 더 높은 금액의 25%를 매년 납부해야 합니다(출처: 법무법인 세종 뉴스레터). 4년이면 땅값 전체에 해당하는 금액이 벌금으로 나가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비사업용 토지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담을 더 높이는 방안까지 거론되고 있습니다.

    숫자만 보면 이게 얼마나 무거운 이야기인지 금방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132만 헥타르를 평수로 환산하면 약 40억 평, 우리나라 전체 국토의 약 13%에 해당하는 면적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땅 위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과 그 자녀들이 지금 이 법 앞에 놓여 있습니다.

     

    요약: 농지 처분 명령이 재량에서 의무로 바뀌었고, 미이행 시 땅값의 25%를 매년 이행강제금으로 납부해야 합니다.

     

    농지 전수 조사가 드러낸 불편한 현실

    정부의 명분은 헌법에 명시된 경자유전의 원칙입니다. 경자유전이란 '농사를 짓는 사람만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투기 목적의 농지 소유를 막기 위해 헌법에 새겨진 개념입니다. 취지 자체에는 저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외지인이 농지를 쪼개 투기하거나 불법으로 임대해 방치하는 관행은 분명히 손봐야 할 문제입니다.

    그런데 1차 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위반 의심 유형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불법 임대차(21.1%)였습니다(출처: 뉴시스). 이번 조사는 농지법이 시행된 1996년 1월 1일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합니다. 그래서 1996년 이전부터 소유해 온 땅은 조사 대상이 아니고, 제가 확인한 바로는 그런 땅을 1996년 이후에 상속받은 경우도 대상에서 빠지며 개인끼리 임대를 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이후에 사거나 증여받은 땅은, 직접 농사를 짓지 못하는 사정이 아무리 딱해도 임대를 주는 순간 위반 의심 대상이 됩니다. 같은 마을, 같은 밭이라도 언제 누구 명의로 넘어왔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리는 셈입니다.

    실제로 전국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층 비율은 이미 50%를 넘었습니다(출처: 통계청). 충남 일대에서는 논밭을 매물로 내놨는데 4개월째 전화 한 통 없었다는 사례가 나오고 있습니다. 가격을 서너 번 내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촌에 젊은 유입 수요가 사실상 사라진 상황에서, 팔지 않으면 벌금인데 팔려고 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는 구조에 어르신들이 내몰려 있습니다.

    선진국들의 접근 방식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선명합니다. 일본은 급격한 고령화로 농지가 방치되자 일반 기업도 농지를 빌려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임차 규제를 대폭 풀었고, 일부 특구에서는 기업의 농지 소유까지 허용했습니다. 독일과 프랑스도 '누가 소유하느냐'보다 '실제로 농지 기능을 유지하고 있느냐'를 핵심 기준으로 봅니다. 대안을 마련한 뒤 규제를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방향이 다릅니다.

     

    요약: 경자유전 원칙의 취지는 타당하지만, 농촌 고령화라는 구조적 현실을 외면한 채 규제가 먼저 들이닥쳐 선의의 소유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행강제금 폭탄, 피할 방법은 있습니다

    처분 명령을 받기 전후로 알아둘 예외와 탈출구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확인할 것은 취득 시점입니다. 1996년 이전부터 소유한 농지, 그리고 그 농지를 상속받은 경우라면 이번 조사와 처분 의무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다음은 상속 농지 예외입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상속받은 농지라도 1만 제곱미터(약 3,000평)까지는 농지은행에 위탁하지 않아도 법적으로 소유가 허용됩니다. 3,000평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처분 의무나 위탁 의무가 발생합니다.

    고령 농업인 예외도 있습니다. 60세 이상이 되어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게 된 분이 5년 넘게 직접 농사를 지어 온 농지는 임대가 허용됩니다(출처: 농지법 제23조). 평생 직접 농사를 지으신 어르신이라면, 심층 조사에서 이 요건부터 확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첫 번째 탈출구는 직접 영농을 재개하는 겁니다. 처분 통지를 받은 후 1년 이내에 본인이 직접 내려가 농사를 짓고 이를 증명하면 처분 사유가 소멸됩니다. 그런데 솔직히 이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주말마다 현지에 내려가 농사를 짓는 직장인이 실제로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해외 거주자나 고령자에게는 사실상 불가능한 선택지입니다. 저는 호주에 거주하고 있어 이 방법은 처음부터 선택지 밖이었습니다.

    두 번째 탈출구가 가장 현실적입니다.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에 임대 위탁을 하는 방식입니다. 농지은행이란 농어촌공사가 농지 소유자와 실경작자를 연결해 정식 임대차 계약을 중개하는 제도로, 이를 통해 임대하면 법적으로 정당한 임대로 인정받아 처분 의무와 이행강제금 대상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농지은행 임대 수탁 면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80% 늘었습니다. 다만 농지은행을 통해서도 임대가 안 되거나 반드시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농어촌공사에 농지 매수 청구를 할 수 있지만, 예산 제한으로 거절될 확률이 높다는 점은 미리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약: 3,000평 이하 상속 농지와 고령 농업인의 장기 경작 농지는 예외가 있고, 그 밖의 경우는 농지은행 위탁 임대가 현재로서는 가장 현실적인 대응책입니다.

     

    호주에서 바라본 황당한 현실

    약 20년 전, 저는 어머님 소유의 땅 500평을 증여받았습니다. 대신 어머님께 약속드린 것이 있었습니다. 어머님 평생 매월 100만 원을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어머님은 돈만 아는 아들이라고 상당히 불쾌해하셨습니다. 그런데 딱 한 달 뒤, 어머님이 먼저 그 조건이 아직 유효하냐고 물어보셨고 월말이었지만 이번 달부터 당장 시작하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순간을 지금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저는 이 약속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달도 빠뜨린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돈의 가치를 더 크게 느끼셨고, 저는 내 명의의 자산이 생겼다는 안도감이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모자간 윈윈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부모님 땅을 자녀가 증여받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제 경험상 그건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등기부상 이름이 제 이름으로 바뀌는 순간, 그 땅은 이제 '농업인이 아닌 자의 소유 농지'가 됩니다. 아이러니한 건 어머님의 나머지 땅입니다. 아버님이 1996년 이전부터 갖고 계시던 땅을 상속받으신 것이라 이번 조사 대상이 아니고, 92세 어머님이 개인 간 임대를 줘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님께 증여받아 제 명의로 옮겨온 500평만 조사 대상이 됐습니다. 원래 같은 어머님 땅이었고, 명의만 어머님에서 아들로 바뀌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호주에서 이 소식을 접하는 제 심경은 설명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효도하겠다고 시작한 일이, 이제 이행강제금을 걱정해야 하는 일이 됐습니다. 어머님은 평생 지켜온 터전을 떠날 수 없다고 하시고, 저는 그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시골 어르신들에게 땅은 단순한 자산이 아닙니다. 평생을 일군 삶의 증거입니다. 그 땅을 팔라는 압박이 얼마나 잔인한 이야기인지, 도시에서 수치를 보는 것과 어머님 곁에서 그 눈빛을 직접 본 것은 전혀 다른 무게입니다.

     

    요약: 효도의 마음으로 20년간 지켜온 약속이, 농지법 개정 하나로 이행강제금을 걱정해야 하는 일이 된 것이 지금 시골 농지를 둘러싼 현실의 단면입니다.

     

    결론

    투기를 잡겠다는 정책 취지는 저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겪고 있는 현실은, 이 법이 타깃으로 삼아야 할 투기꾼보다 부모님 땅을 넘겨받은 자녀들과 더 이상 농사를 짓기 어려운 어르신들을 먼저 건드리고 있다는 겁니다. 농지 전수 조사 결과 위반 의심 27%, 약 30만 헥타르라는 수치 뒤에는 평생 농사를 지어온 어르신들의 삶이 있습니다.

    정리하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세 가지입니다. 등기부로 취득 시점이 1996년 이전인지 이후인지 확인하고, 상속 농지나 고령 농업인 예외에 해당하는지 따져보고, 해당하지 않는다면 처분 명령이 오기 전에 한국농어촌공사 농지은행 상담을 먼저 받는 것입니다. 우편물이 날아온 뒤에 움직이면 1년이라는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사전 준비만이 지금 상황에서 재산을 지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참고: 농지 전수조사 1차 결과 (뉴시스)

    글쓴이 | Extra Wage
    한국 대기업에서 22년 동안 회계·세무·자금 업무를 맡아 CFO로 퇴직했고, 지금은 호주에서 10년 넘게 자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직접 겪은 경험으로 경제 이야기를 씁니다.